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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이강원은 재료적으로 루버 스펀지와 크레파스를 사용하며 크게 두 가지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하나는1전시실 전체를 덮은 검정 루버 스펀지로 만든 조각품들이며, 다른 하나는2전시실에 크레파스로 제작된 남색, 다홍색, 하늘색의 작품들이다. 조각에서는 다소 친숙하지 않은 비전통적인 재료를 선택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으며, 그러한 재료적 속성에 의해 미묘하고 인상적인 색깔이 발산됨으로써 공간을 압도하는 강렬함을 보여준다. 특히1전시실에 펼쳐진의 경우, 각각의 조각들은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조각품들은 모두 자신만의 ‘그림자’매우 뚜렷이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조각가 이강원에게 있어 핵심적인 포인트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그림자를 주목하고 있으며, 조각에 있어 그림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각은 매체의 특성상3차원의 입체로서 타장르에 비해 전시되는 공간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그리고 조각상이 실제 공간에 놓이게 되면 너무도 당연히 조각상의 그림자가 생성되기 마련이다. 물론 공간에 따라 그림자는 자연광에 의해 나타날 수 있고, 인위적인 조명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으며, 빛의 양에 따라 그림자도 그 명도를 달리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빛을 완전히 차단하고 온전히 촉각으로 느끼는 조각을 의도하지 않는 한, 그림자는 물체라는 주인을 영원히 따라다니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조각이라는 장르를 지칭하는 여러 특징 중, 그림자는 개념적•관념적측면에서는 다소 부수적인 구성성분으로 치부되겠지만, 그것이 현실적•물리적으로설치되었을 때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조각의 일부분임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조각에 있어 그림자의 재발견을 위해 이강원은 고무성분이 가미된 공업원료인 루버 스펀지를 사용한다. 그는 마치 나무를 다루듯, 전통적인 기법으로 루버 스펀지를 깎고 사포로 다듬어 어떤 형태를 완성시켜 나가며, 동시에 재료를 깎는 과정에서 잔여물로 떨어지는 가루를 수집한다. 루버 스펀지 가루는 버려져야할 하찮은 사물이겠지만, 작가는 그것을 그 조각품에 맞는 그림자로 재활용하여 새로운 지위를 부여한다. 그림자는 덩어리감이 없어 우리가 손으로 그 존재의 실체를 감지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물질화되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또한 그림자는 빛에 의해 생성되는 것으로, 가공의 그림자가 형성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작가는 가공의 빛까지 염두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게다가 가루를 통해 그림자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그림자라는 가짜 이미지, 즉 그림자의 환영을 탄생시키고 있다.
 
2전시실에 위치한 ‘색깔이 있는’작업 역시 색다른 재료를 이용한다. 바로 크레파스이다. 그런데 크레파스는 통상적으로 회화에서 주로 접하게 되는 그림도구로, 조각의 입장에서 보자면, 왠지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도구이다. 크레파스는 물감, 페인트와 같이 색채를 나타내고 강조하는 재료인 동시에 색 그 자체이며, 회화에 있어 형태가 색을 지니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관습적으로 조각이라는 장르는 입체성과 양감을 드러내는 것을 본질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색채는 조소적 효과의 비본질적인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였으며 더불어 작품의 효과를 해친다고 하여 조각의 착색은 기피되기도 하였다. 작가는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조각에서 소홀히 다루어지는 색채를 다시 조명하고자 색으로 이루어진 재료인 크레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는 크레파스를 액체로 녹이고 캐스팅하여 형상을 만드는데, 이것은 깎고 다듬는 루버 스펀지 작업과 같은 맥락으로 기법 상 조각의 큰 틀을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 크레파스 작업은, 등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과 도시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데, 처럼 이강원은 빛과 그림자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여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루버 스펀지와 크레파스 작업을 하나의 독립된 조각품으로 바라보는 층위에서, 그는 조각이라는 매체가 자칫 간과하기 쉬웠던 부분을 파고들어 보완적 의미로 접근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루버 스펀지 조각품과 크레파스 조각품이 각각 하나로 묶여 전시장에 놓여지면, 마치 전시제목인 'scene'과 같이 한 장면을 형성하며 시각적으로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 그 순간 개별적인 조각품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통합되며, 그 결과 우리의 시선은 온전히 색채에게 몰두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공간에 작품이 흡수되어 조각품은 물리적인 양감과 두께를 잃어버리고, 비물질적이고 평면적인 이미지로 전이된다. 특히 단색과 추상적인 모습으로 이루어진 그의 조각은 그러한 효과를 더욱더 돋보이게 한다. 그는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색, 빛, 그림자 등을 통해 입체로부터 평면 이미지로 횡단하며, 조각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좀더 확장시키고 있다.
 
이강원은 조각에서 그다지 눈에 띠지 않았던 그림자와 색채를 빛바랜 사진첩에서 찾아내어 본연의 색으로 돌려놓았다. 또한 비조각적인 것을 재해석하여 조각이라는 매체를 둘러싼 사고의 지평을 부드럽고 매끈하게 펼쳐놓을 뿐만 아니라, 평면적인 이미지로서의 조각을 만들어냄으로써, 조각과 회화의 영역 구분하는 주름과 매듭을 유연하게 풀어 상호 침투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류한승 / 예술학,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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